한식을 배우고 싶대요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연말이라 괜시리 마음이 들떠요. 남편과 둘이 조용히 지내다 두 아이가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오고 나니 분주합니다. 미국 대학 기숙사 생활하며 사는 아이들이라 집에 오면 무조건 잘 챙겨먹여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먹고 싶은 것들 리스트 받아들고는 장 봐오고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네요. 

 

 스터디 어브로드로 독일에서 세 달 지내다가 온 큰아이 가방에 고추장과 김치 한 병이 들어 있어요. 생전 먹는 걸로 투정 안하고, 한식을 고집하는 아이도 아니건만 독일에서 고추장과 김치를 사서 먹었대요. 한국인 맞구나 했어요. 그리고 뜯지 않은 새 것은 알뜰하게도 집에 오면서 챙겨서 갖고 온 덕분에 저도 독일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추장과 김치를 구경해 봅니다. 한국아이는 저희집 큰아이 혼자 유일했는데 친구들한테 K- 먹거리로 고추장과 김치를 맛보여 주었다고 해요. 

 

 잠깐 아이가 독일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김치 사진 보여드릴께요.

샘표 고추장과 한국김치라는 이름에 독일어가 잔뜩 씌여져 있는 김치에요.

독일에서 구입한 샘표 고추장과 김치 

 

 큰아이는 새학기에 바로 스터디 어브로드부터 시작하느라 기숙사 배정을 받지 못했어요. 일년간 지내야 하는 기숙사에서 첫 삼개월을 독일에서 지내니 어찌보면 당연한 거죠. 얼마전 새 기숙사로 스탠포드 아파트로 배정받았어요. 여기는 주로 대학원생들이 지내는 곳으로 밀플랜도 자유롭게 구매하면 되는 곳이에요. 아파트에 주방이 있어서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튜이션에서 밀플랜은 빠져서 나왔고, 원하면 추가하면 된다는데 큰아이가 혼자 해먹어 보겠다고 해요. 원래 뚝딱뚝딱 요리 잘하는 아이이긴 한데 혼자서 어떻게 해 먹고 지낼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주방살림도 챙겨야 해서 저도 일거리가 늘었습니다. 

 

 둘째학교인 하버드 대학은 2학년부터 하우스에서 지내게 됩니다. 하버드 야드에서 지내는 신입생기간 동안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찾아 4명정도가 house blocking을 해요. 그리고 남은 3년동안 같은 하우스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둘째도 이미 house blocking할 친구들을 찾았고요. 친구들과 같이 살림 차린다며 신났어요. 그러면서 이번 겨울 방학에 요리를, 한식을 배우고 싶다고 해요. 그 첫 작품이 바로 계란말이였어요. 처음한 계란말이치고는 아주 훌륭합니다. 

둘째가 만든 첫 계란말이

 아직 에세이 쓸 게 남은 큰아이는 집에 와서도 여전히 바쁩니다. 자기도 에세이 마치고 나면 된장찌개부터 배운다고 기대에 차 있어요. 아이들이 가끔 요리도 하고 쿠키나 빵도 굽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한식을 가르칠 생각을 못했어요. 뭐든 배워두면 좋고, 아이들이 원하면 알려주겠지만 당장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라 필요하지 않으니 어떨까 싶기도 해서요. 그래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한식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그런데 제 생각보다 그 시기가 좀 일찍 찾아왔어요. 서양요리야 레서피 찾아서 저보다 더 잘해요. 한식은 엄마한테 배우고 싶다고 해요. 저도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닌데 그동안 집에서 먹었던 한식들 위주로 하나씩 전수해 보려고 해요. 

 

 예전에 제가 결혼하고 된장찌개 끓이면서 한 냄비 끓였던 일화며, 친구들 중 제일 먼저 결혼한 친구의 요리 에피소드들 나누며 주방에서 모처럼 시끌벅쩍했어요. 한식하면 기본으로 된장찌개가 떠오를만큼 만들기도 쉬울 거라 생각하는데 은근 만들기 어려운 게 된장찌개더라고요. 간 맞추기만 잘하면 일단 반은 성공이고요. 싱거워서 된장 좀 더 푸니까 짜서 물 다시 붓고, 싱거워서 된장 다시 풀고... 이렇게 몇 번하니까 금세 찰랑찰랑 된장찌개 한 냄비가 됩니다. 

 

 제 친구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였는데 간 맞추다가 '설탕 넣으면 다 맛있지?'라는 생각에 콩나물국에 설탕을 넣었대요. 신혼이라 남편은 아무말않고 한 그릇 다 비우고요. 설탕 넣은 콩나물국은 어떤 맛일까 싶다가도 신혼부부가 그 콩나물국을 먹고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요. 

 

 하여튼 뭐든 배워두면 좋아요.  한식을 배우겠다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해요. 이번 겨울방학동안 한식을 배우겠다는 두 딸들의 성원에 힘입어 저도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집에 오니 할 일이 늘었지만 좋아요. 방학맞아 집에 온 자녀들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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