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월요일이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에요. 메모리얼 데이는 남북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무덤에 깃발과 꽃을 가져다 놓는 날로 시작해서 이제는 모든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날짜로 공휴일을 지정하지 않고 요일로 공휴일을 정해요. 예를 들면, 메모리얼 데이는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땡스기빙데이는 11월 넷째주 목요일, 이런식으로요. 그러다보니 매해 새 달력을 받아들고 달력에서 휴일찾기하는 기분은 내기 어렵죠. 징검다리 휴일이라든가 샌드위치 데이 이런 거 기다리는 재미가 한국처럼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렇게 요일로 공휴일을 지정하는 것이 한 해의 전체적인 휴일 배분에 있어서는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남편이랑 정말 아주 오랜만에 코스코에 다녀왔어요. 코로나 초기나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마트에 장보러 가는 게 무슨 큰일을 하러 가는 양 저도 그렇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느껴졌는데 거의 다섯달만에 찾은 오늘 코스코의 모습은 사뭇 달랐어요. 모두 마스크를 쓰고는 있었지만 예전처럼 긴장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이제 뉴노멀 시대에 모두 적응이 된 듯한 모습이랄까요.
수박을 열 덩이 사왔어요. 정말 많이 사왔죠. 장봐온 걸 정리하며 도와주다가 둘째가 신이나서 수박 피라미드를 만들어 놓고 사진을 찍었어요. 큰아이가 수박을 진짜 좋아해요. 앞으로 3주 있으면 큰아이가 대학 캠퍼스로 가게 되어 가기 전에 제일 좋아하는 수박 실컷 먹이자 싶어서 겸사겸사 코스코에 장을 보러 간 거였어요. 그 많고 많은 과일 중에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수박을 제일 좋아했어요. 수박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농담삼아 "엄마가 좋아? 수박이 좋아?" 하고 물어보곤 해요. 그러면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때론 엄청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능청스럽게 "엄마지~"하기도 해요. 보스턴 유스 심포니 오케스트라(BYSO)를 시작으로 매해 여름 슬립어웨이 써머캠프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일주일에서 점점 늘어나게 되어 나중에는 한달 코스의 써머캠프를 다니기도 했어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쯤 되면 제일 먹고 싶은 것 얘기하라고 준비해 놓는다고 하면 그 대답은 늘 수박이었어요. 한마디로 수박러버에요.
지난 가을학기부터 대학신입생으로 캠퍼스를 누려야 할 아이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어 올 6월 중순 넘어 처음으로 학교 캠퍼스에 가게 되었어요. 대학생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엄마인 제 눈에는 아이같아서 집 떠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하는 아이가 여러가지로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렇지만 이제 홀로서기를 천천히 연습해야 하니 믿고 지켜봐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큰아이는 이제 집을 떠나 대학으로 가고, 또 어딘가에 자리를 잡게 되겠죠. 아이는 제 품을 떠나 있겠지만 수박을 볼때면 늘 큰아이가 생각날 듯 해요.
다시 수박얘기로 돌아와서, 한국 수박이 미국 수박보다 훨씬 맛있어요. 어디 수박뿐이겠어요. 미국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쩐일인지 한국은 더 그리워지고 그래요. 예전 어느 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수박 가격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다 먹고나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도 은근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고요. 그에 비하면 미국에서의 수박 가격은 너무 착하죠. 아직 제철은 아닌지라 한 덩이에 $6.49로 모셔왔지만 곧 있으면 $3.99까지도 했던 것 같아요. 쓰레기 분리수거를 거의 안하다시피하는 미국인지라 수박 껍데기 처리하기도 한국에 비하면 너무 쉬워요.
코스코에 들어오는 수박은 생산되는 농장이 여러 군데로 시기별로 빠르거나 늦은 수확을 하는 농장 등에 따라 수박에 붙어 있는 스티커가 달라요. 그래서 맛있는 농장의 수박인지 아닌지를 스티커로 확인해요. 저는 먹어본 수박 중 제일 맛있는 수박 농장 스티커를 코스코 카드 뒷면에 붙여두었어요. 다음해 여름 수박살 때 기억하기 좋게요. 여기서 팁은 바코드는 잘라내고 스티커를 붙이는 거에요. 잘못하면 코스코 멤버카드 스캔할 때 수박 바코드가 찍혀서 사지도 않은 수박을 계산하게 되는 수도 있어서요.
아이가 수박을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미국에 처음와서는 수박 고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수박 고를 때 기억을 떠올려 이 수박, 저 수박 두드려보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는 수박꼭지가 마르지 않고 싱싱한 것으로 고르고, 수박꼭지가 돼지꼬리처럼 구부러진 모양을 수박을 고르면 달고 맛있는 수박이다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은 수박꼭지를 모두 짧게 잘라서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어요. 또 예전에 미국에 처음 오던 해에 마트에 가서 열심히 통통통 수박을 두드리고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제 모습을 본 한 백인 아저씨가 수박이 무슨 말을 해주냐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나요. 우스개소리로 내가 고르고 싶은 수박을 결정했으면 그 옆에 있는 수박을 들고 가라는 말도 들어봤고요. 또 <수박고르기는 셀프입니다. 사실은 직원도 몰라요. 그동안 아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청과물 담당 마트 직원의 양심선언도 기억이 나요. 그만큼 한국이든 미국이든 맛있는 수박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거 겠지요. 이제 미국생활 15년이 넘어가니 미국에서 수박고르기 선수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맛있는 수박 고르는 방법을 나눠볼께요.
맛있는 수박고르는 방법
1. 수박 배꼽이 작으면 작을 수록 좋다. 수박 꼭지 반대편에 있는 배꼽은 꽃이 떨어진 자리로 작을수록 달다.
2. 수박 밑둥이 오렌지색이나 노란 부분으로 넓을수록 달다. 그만큼 오랫동안 밭에서 자라 잘 익었을 가능성이 있다.
3. 그 밑둥에 갈색 상처가 많은 것으로 고르자. 벌이 다녀간 흔적으로 긁힌 부분이 많으면 달다.
4. 수박의 줄무늬가 모두 선명한 색으로 고른다.
5. 직접 수박을 들어보고 무거운 것으로 고른다. 수박에 물이 많이 들어 있어 쥬시(juicy)하다.
6. 손으로 두드렸을 때 종치듯 맑은 소리가 나는 것으로 고른다.
◈ 맛있는 수박 고르기 한줄 요약 ◈
작은 배꼽, 진한 노란 궁뎅이, 갈색 상처, 선명한 색, 무거운 수박, 종치는 맑은 소리
그리고, 동그란 수박으로 골라라하는 말이 있어요. 과일에도 암수가 있죠. 여자 수박은 동그랗고 더 달다고 해요. 남자 수박은 길다랗고 물이 많고요. 동그란 수박이 길쭉이 수박보다 더 맛있다는데 미국에서 동그란 수박 보기가 쉽지 않아요. 또 한국에서는 수박 밑둥에 받침을 해서 키우기 때문에 미국 수박처럼 밑둥이 오렌지색이나 노란색이 나지않고 고루고루 초록색이라고 해요. 비싼 만큼 좀더 상품가치가 있게 재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수박이라는 이름은 같은데 어디서 자라느냐에 따라 다른 듯 해요. 문득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