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든 미국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미국은 아이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bullying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미국은 학교폭력이 없겠다고요? 그럼 인종차별은요?
저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니 (아주 잠깐 ESL 클래스를 다니긴 했지만 이건 정규학교 과정은 아니니) 학교폭력을 경험해 볼 기회 자체가 없었다고 해야겠죠. 그러면 인종차별은요? 잠시 생각해 봅니다. 저는 워낙에 잘 웃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안 되는 영어로 살아야 하니 웃음으로라도 때우려고 더욱더 잘 웃는 사람이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미국에 10년여 넘게 살면서 아마 인종차별이라 단정지을 수 없지만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처음 미국에 와서는 영어가 잘 안 들리고,문화적인 차이로 모르고 그냥 넘어갔겠죠. 또 대화하는 순간순간이니 그냥 웃다가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고요.설사 그당시 인종차별을 받았다 한들 안 되는 영어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여기서 영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또 나오죠!
중부 시골 조그만 칼리지타운에서 저희 아이들은 프리스쿨을 마치고 사립학교를 다녔어요. 사립학교라지만 중부 물가로 따지면 학비는 저렴한 편인 아주 작은 학교였어요. 새 학기가 8월 20일경(지역에 따라 8월, 9월에 달라요)에 시작되는 그곳에서 저희는 미국에 2월 13일에 왔으니 선택의 여지도 없이 오프닝이 있는 프리스쿨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킨더는 좀 알아보고 사립학교로 가게 되었지요. 보스턴으로 이사를 계획하면서 사립학교를 찾아보니 물가 비싼 보스턴에서는 사립학교를 보내는 게 쉽지 않겠더라고요. 남편이 직장을 잡았고, 이제 미국에서 정착해야 하니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과 또 아이가 하나면 어떻게든 보내 보겠는데 둘을 사립학교를 보내기에는 부담이 되었어요. 그렇다고 한 녀석만 사립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보스턴은 교육의 도시니까, 공교육이 잘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으니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중부의 사립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20명 남짓, 킨더부터 8학년까지 기껏해야 전교생 2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사립학교여서 정말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보스턴에서 공립학교를 보내려는데 학교가 너무 큰 거예요. 그래 봤자 한 학년에 클래스가 5-6개 정도였는데, 한국에 비하면 큰 건 아니겠지만 보스턴에 이사와 처음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도 저도 어리둥절했습니다. 어쨌든 보스턴에서의 첫 학교는 그랬어요.
보스턴에 막 이사와서는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집을 장만하게 되면서 1년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또 전학을 해야 했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너무나 미안했지요. 그래도 새로 이사 온 동네에 와서도 아이들은 적응을 잘하는 듯 보이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 정말 감사해하며 한 해, 두 해 그렇게 지낸 것 같아요.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도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 중학교에서 인종차별 비슷한 문제로 학교가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거의 이와 관련해 진행과정을 담은 이메일을 학교에서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너희들도 그런 경험이 있었냐고 학교가 끝나고 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둘째가 "엄마, 내가 처음 여기 이사 오고 학교에 간 날, 점심 먹으러 카페테리아에 갔는데 어디서 먹어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다가 에밀리(라 부를게요. 새 집에 이사 온 날, 이삿짐을 나르고 있을 때 저에게 와서 인사한 이웃 백인 아줌마 딸이에요. 이 엄마가 자기도 딸이 둘이 있다며 얘기 나눠보니 둘째들 나이가 같고, 무척이나 나이스 하길래, 같이 플레이데잇 약속도 잡고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아이들을 우선 밖에서 같이 놀게 했어요. 학교 PTA에서도 한자리 차지하고 이 동네에서 대를 이어 오래 산 전형적인 백인 아줌마에요.)는 아는 얼굴이라 그 애가 있는 테이블로 갔어. 그랬더니 에밀리가 "여기는 얼굴 하얀애만 앉는 자리야."라고 아주 큰 소리로 말해서 자기가 다른 자리로 가서 런치를 먹었다는 얘기를 아주 덤덤하게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운전을 해서 집에 왔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아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아무리 미국에서 살고 있어도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그렇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니 영어를 못해서 인종차별을 받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우리 아이들은 인종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인종차별은 나하고는 먼 얘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해도 일단 피부색이 우선 다르니까요. 둘째아이가 워낙 밝고 씩씩한 아이에요. 써머캠프에 가서 쿠키먹기 대회에 나가 쿠키 73개 먹고 일등을 하고, "쿠키가 더 있었으면 난 더 먹었을 거야"라고 수상소감(?)을 밝힌 아이에요. 그렇게 밝고 씩씩한 아이라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그당시 학기가 끝날 무렵 막 전학을 해서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는 나름 신경썼다했었지요. 그렇지만 아이는 엄마에게 얘기를 못했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엄마가 슬퍼할 게 분명해서, 또 엄마에게 말해도 자기 피부색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 말하지 않았다는 말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죠.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아이들도 다 알고 학교에서도 배우죠.그렇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로 중국 바이러스니 하면 트럼프 대통령부터 이런 얘기를 하니 한동안 미국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된 폭행 사고들이 있었어요. 우리가 동유럽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백인으로 보듯, 미국 사람들은 중국인이나 한국인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심지어 동양인은 다 중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오해할까 싶어 코로나 이후 한동안 밖에 나가는 게 무섭게 느끼지기도 했어요. 실제로 (I'm not Chinese!) 중국인 아니라는 티셔츠 등이 나오기도 했었죠. 물론 지역차가 있지만 대부분 미국에 거주하는 동양인 중에 중국인 비율이 높으니 미국인들은 동양인하면 먼저 중국사람을 떠올린답니다.
저와 남편은 한국에서 자라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우리 아이들은 겪어야 하니 때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한국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다면 적어도 피부색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는 없을테니까요. 이와 관련해서 찾아보니 많은 이민가정 특히,아시안 아이들이 학교 다니면서 크고 작든 인종차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요. 그렇지만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요.저희 아이와 비슷한 경우인 것 같아요.저희 아이 말이 그때는 에밀리가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랬을 거라고,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군요.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큰 생각을 하고 있어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제 지인 중 한 분은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로 자꾸 물어보셨대요. "땡땡아, 미국 친구들 많이 사궜어?" 하도 이렇게 물으셔서 어느 날은 "엄마, 한국에 동남아 사람들 있는데 엄마는 엄마가 먼저 나서서 친구하자고 해요? 친구 하고 싶어?"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그 후로는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고. 이 얘기를 들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아, 맞아, 이런 느낌이겠구나. 내가 그 아무리 한국에서 잘 나갔다 한들 그들은 나를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 온 이민자, 이방인으로 보겠구나. 그들 눈에는 그냥 유색인종(people of color)인거죠.
남의 나라에서 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저는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있으니 힘든 일이 있으면 나가지 않고, 숨고 피하면 되지만,아이들은 학교에서,남편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까 싶어요. 그래서 적어도 집에서 만큼은 편안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우리가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어디에 살고 있든 간에 삶의 무게가 있을테니 불평은 하지 않아요.주어진 현실에 열심히 살자가 삶의 모토랍니다. 어디에 살든 아이들은 사랑 듬뿍받고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