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킹인잉글리쉬~*

똥칠 & 모모

혹시 친칠라를 아시나요? 친칠라 보이들이 저희 집에 함께 살고 있어요. 이름이 참 특이하죠? 

친칠라요? 키우기 전까지 저도 전혀 몰랐던 동물이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친칠라 보이들과 4년을 한 집에서 살게 되었네요. 

보스턴에 온 다음해 감사하게도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은행집에 세들어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이제 여기까지는 진짜 우리집인거야?' 손으로 줄을 그어가며 농담삼아 남편이랑 얘기하곤 해요. 어쨌든 영혼까지 끌어모아 다운페이를 하고 아이들은 이사한 동네로 다시 학교를 옮겨야 했어요. 중부에서 보스턴으로, 또 보스턴 내에서도 다른 타운으로요. 처음에는 되도록 아이들 전학을 시키지 않으려고 그 동네에서 집을 알아봤는데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15분가량 떨어진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 또다시 전학을 하게 되었지요. 전학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지, 저는 어린시절에 그런 경험이 없어 여기저기 찾아보고 알아보니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래요. 특히나 미국은 지역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인종간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르니 더 힘들다고요.

 

전학 후에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신경쓰며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이든 미국이든 아이들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차차 이야기 할께요. long story short (요약하면, 간단히 말하면- 오늘은 이 표현하나 익혀봐요. 8월 팟캐스트에서 나왔던 표현이에요. 배운 건 한번씩 써봐야 잊어먹지 않고 쓸 수 있어요. ) 2020/08/16 - [NPR 팟캐스트] - 영어공부 팟캐스트 NPR Podcast로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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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는 영어공부를 위한 좋은 자료로 많은 영어교육 전문가들이 추천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영어공부 하기에 좋을까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제, 정치, 경제, 문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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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큰아이도 둘째도 오자마자 인생의 베프를 만나게 됩니다. 둘째 아이의 베프는 러시아 친구였어요. 미국은 여러 인종이 함께 살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인도 사람은 이렇더라, 러시아 사람들은 그렇던데, 히스패닉이잖아, 중국 사람인데... 뭐 이런류의 글들을 심심치 않게 미국내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보게 되곤 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러시아 사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고, 이 친구 가족을 만나고 한참 뒤에 그런 글들을 본 게 다행이라 할까요? 역시 사람은 자신의 경험치로 판단하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 말하는구나 싶었어요. 흔히 말하는 케바케, 사바사? 인데요. 저는 자신있게 '러시아 사람들 좋아'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왜냐면 제가 만난 러시아 사람은 이 가족뿐이고 너무 좋아서요. 

 

어쨌든 그 러시아 친구(폴리나)랑 저희 아이는 베프가 되어 학교가 끝나면 플레이데잇(playdate)을 줄곧 했어요. 그 집은 저희 둘째와 같은 나이의 딸 하나였고, 저는 큰아이가 있으니 이 엄마가 여러모로 저를 많이 도와주었지요. 자기는 아이가 하나라 혼자서 늘 심심해하니까 저희 둘째랑 놀면 좋다고 그게 자기를 도와주는 거라고요. 저희 큰아이 스케줄이 있을 때면 학교에서 픽업해서 데리고 있어주고 그랬어요. 그 당시 얼마나 고맙고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저희처럼 가족만 달랑 미국에 오게 된 경우, 미국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기가 힘든 게 주변에 도움을 구할 부모님, 형제자매, 친한 친구들이 없다는 거에요. 막 새로 이사온 낯선 동네에서 누구를 믿고 아이들을 맡기겠어요. 그러니 아이들 케어는 온전히 엄마들의 몫이 되지요. 그 친구네도 러시아에서 그 가족만 미국에 온 케이스라 저와 같은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사는 것, 아이 키우는 것 등등 공통되는 것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사실 외국인 친구를 베프로 사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소소한 마음을 나누기에는 언어의 한계때문이지요. 글쎄, 이놈의 영어가 친구 사귀는데도 발목을 잡아요!  어쨌든 이제는 딸끼리도 엄마끼리도 베프가 되었지요. 벌써 10년지기 친구가 되었네요. 그 바탕은 따뜻하고 배려심많은 친구의 좋은 성품 덕분이라 생각해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직접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문자로 서로 안부를 나누고 있어요.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미국에 휴지 대란이 있었던 때에 나눴던 대화에요. 이때는 인종을 불문하고 서로 안부인사로 '휴지있어? 없으면 내것 좀 갖다 줄께'였어요. 지나고 보니 너무 우스운데 연일 뉴스에는 마트의 빈 진열장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휴지없다, 못샀다 이런 얘기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죠. 

(구글 이미지)미국의 휴지 대란/ 폴리나 엄마와 문자

친칠라 보이들 얘기하려는데 딴 소리가 길어졌네요. 여튼 그 가족이 3년 뒤에 다른 타운으로 집을 사서 이사를 합니다. 차로 50분거리에요.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당연히 폴리나는 혼자 심심해했고, 펫(pet)이 있어야 한다고 노래를, 노래를 부르고 결국 그 아빠가 허락을 합니다. 다만 작은 걸로 가자~ 그래서 친칠라 보이를 입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녀석이 너무나 예쁘고 착한 거에요. 이 예쁜 아이를 외롭게 할 수 없다고 곧 친칠라 걸을 또 입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친칠라 보이들이 탄생하게 되었지요. 그 첫 아기들이 바로 똥칠이와 모모에요. 처음 태어난 아기들을 베프인 저희 둘째에게 꼭 주고 싶다고 해서 저희 집에 오게 되었어요. 8월 1일이 똥칠이와 모모의 생일이에요. 여름 방학을 맞아 저희 아이가 놀러갔는데 태어난지 얼마안된 친칠라를 보여주며 조금더 크면 주겠다노라 약속하고 이름도 짓고 둘이 그랬다네요. 물론 저는 이런 계획이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자기들이 여자애들이니까 아무런 생각없이 친칠라들도 여자 이름을 지었더라고요. (제니 & 모모) 로요.

 

10월 할로윈이 있기 전 주말에 그 집에 놀러간 둘째 아이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둘째: "엄마, 폴리나가 친칠라 아기들 나 주고 싶대, 집에 데려 가도 돼?"

나: "친칠라가 뭔데? 뭔지 알아야 데리고 오든지 하지."

둘째: "토끼같은 거야, 엄마. 내가 다 잘 돌볼게."

나: "응, 그래."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저희 가족이 되었어요.

저는 정말 얼떨결에 오케이 한거에요. 조그만 녀석들이라 손도 안 갈거고, 자기가 돌보겠다는 둘째의 말만 믿은 순진한 엄마였던 거죠. 아시죠? 그 다음은... 육아는 장비빨이라는데 하물며 케이지도, 먹이도 암것도 없네요. 그걸 걱정하고 폴리나네서 Birth Certication(생년월일과 태어났을 때 무게 등)을 정성스레 적고, 잘 키워다 달라는 메모와 함께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서 보냈더라고요. 그날 밤 저는 부랴부랴 아마존 프라임으로 케이지며 친칠라 아기들 살림살이를 장만했어요. 그리고 2개월 후, 겨울 방학에 제니와 모모는 엄마아빠를 만나러 고향집에(폴리나네) 방문하게 됩니다. 그냥 엄마아빠 만나러 간건데 제니와 모모는 보이로 성변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친칠라가 아기때 너무 작아서 보이인지 걸인지 구분이 어렵대요. 저는 당연히 '제니 & 모모" 이름까지 지어서 왔으니 한치의 의심도 없이 걸들인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태어나서 4개월 넘게 걸들 인줄 알고 산거지요.

 

이름을 뭘로 짓지? 순식간에 보이들로 성변경되어 온 친칠라를 보고 온 가족이 당황하게 됩니다. 모모는 보이든 걸이든 괜찮은 이름인데 보이 이름으로 제니는,,, 제니는 아니잖아요. 네 식구가 나란히 케이지 앞에 서서 이름짓기 공모전을 해보지만 마땅히 떠오르지가 않아요. 그때 남편이 "똥칠이 어때? 똥칠이로 가자~" @#$^%&* 그렇게 제니는 똥칠이라는 이름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니~ 모모~ 이렇게 불렀던 것을 보이들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똥칠, 모모 이렇게 부르게 되네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려나요?)

 

친칠라 보이들 - 똥칠 &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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