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킹인잉글리쉬~*

 파리에서 큰아이랑 같이 있는 둘째가 한식이 먹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한국식당 가서 사 먹으라니 비싸대요. 얼마전 한국에 다녀와서 한국에서 김밥 가격을 알고 있으니 프랑스 김밥이 너무 비싸게 느껴지나봐요. 프랑스에서는 김밥 한 줄에 12유로래요. 갑자기 김밥이 생각나서 텃밭에 나가 깻잎 따오고, 시금치 대신 케일 듬뿍 넣고, 둘둘 김밥을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가족 단톡방에도 보냈어요. 요즘은 날도 덥고 남편이랑 둘이 있으니 정말 아주 간단하게 먹고살아요.

 

둘째와의 카톡 대화 

 

 간단 김밥 만들기 재료 

김밥용 김 2장, 밥 100g(작은 두 주걱), 깻잎, 참치, 계란 2개, 당근, 케일

밥 양념: 참기름, 소금 약간, 깨소금

김밥 재료

 

 텃밭에서 기른 깻잎에, 케일 데쳐서 나물 무치고, 계란지단 만들어 가늘게 채 썰듯 썰어 넣고, 당근도 채 썰어 볶아요. 코로나 초기에 사두었던 참치 한 팩 뜯어서 올리고 둘둘 김밥을 말았어요. 참치김밥엔 역시 깻잎이 들어가 줘야 맛이 살아요. 여름이라 시금치는 금방 상할 것 같아 케일로 대신 넣었어요. 시금치나물 무치듯 똑같이 케일도 데쳐서 참기름, 소금,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되고, 잘 상하지도 않아 이삼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데다 건강에도 좋아요. 

 

 탄수화물 줄인다고 밥은 아주 얇게 펴고 준비된 재료로 김밥 속을 가득 풍성하게 채웁니다. 나란히 두 줄 싸서 한 줄씩 남편이랑 나눠먹었어요. 단무지 없어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다음날 점심에도 또 만들어 먹었어요. 그림만 봐도 고소한 향이 전해 지네요. 김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김밥의 추억 

 근데 누가 간단히 김밥 싸 먹자 했을까요? 김밥은 먹기는 간단하고 편하지만 생각보다 수고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에요. 제 생애 처음 미국에 와서 김밥 싸던 날 이야기에요. 호기롭게 아이 친구들을 불러 플레이데잇 하는 날, 김밥을 먹으려고 준비합니다. 김밥은 간단하니까요? 아이들도 하나씩 집어먹기 좋고요. 김밥을 만들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밥솥 한 가득 밥하고, 계단지단 만들고... 어떻게 재료는 준비했는데... 사실 재료 손질해서 준비하는 데에도 한 세월 걸렸어요. 주방에 서서 오랜 시간 준비하니 김밥을 만들기도 전에 지쳐 버립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건 김이 돌김이었어요. 구멍 송송난 돌김에다 김밥을 싸니 옆구리가 터지다 못해 처참해서 봐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어요. 당연히 아이들은 어리니 흉측스러운 김밥을 몇 개 집어먹고 말았지요. 과일이랑 다른 간식으로 배를 채웁니다. 

 

 남은 건 저녁으로,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김밥을 보여주니 다시는 김밥을 싸지 말라고 해요. 남편은 주는 대로 아무 불평 없이 먹는 사람이에요. 사실 지금까지 결혼 생활하며 처음 들어본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할 정도니 어떤지 상상이 되실 듯요. 몇 개 싸 둔 김밥은  다 터지고, 그러니 제대로 썰어지지도 않아요. 의욕이 떨어져서 김밥도 싸다 말고 남은 재료들은 널브러져 있었거든요.

 

 근데요, 뭐든 하면 늘어요. 그러면서 김밥에는 아무리 맛있어도 돌김을 쓰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그렇게 김밥을 싸고, 또 여러 번 싸니 이젠 제법 모양 괜찮은 김밥을 휘리릭 쌀 수 있어요. 그래서 가끔 김밥을 먹을 때면 남편에게 그때 김밥 싸기를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냐며 의기양양 말해요. 그러면 남편은 놀려요. 자기가 만들어놓고 맨날 맛있다고 한다고요. 자기가 한 음식이 맛있기 시작하면 살찌는 지름길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봐요. 그런데 김밥 포스팅하다 보니 또 먹고 싶네요. 

 

 미국생활 16년 차, 이제 김밥쯤은 휘리릭 만들 줄 아는 주부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제대로 살림을 한 적이 없어서 미국에 오던 첫 해에는 먹고사는 게 큰 일이었어요. 미국 중부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한국 식당도 그리 많지 않은 동네이기도 했고, 아이들도 어리고 포닥 살림에 식당이 있다 한들 나가서 척척 사 먹기도 힘들 때였죠. 맨땅에 헤딩하듯 그렇게 요리를 배워갔어요.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세상에 배울 게 참 많아요. 그래도 하나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게 즐겁고 재미있어요. 프랑스는 김밥 한 줄에 12유로라는 둘째의 말에 오랜만에 김밥싸서 먹고 옛 추억도 소환해 봤어요. 맛있는 음식 드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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