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킹인잉글리쉬~*

 이 추운 겨울날, 옆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어요. 그냥 얼마 전부터 느낌이 이상했었어요.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눈물이 나요. 12월 3일 금요일 오후, 둘째를 학교에서 픽업해 집에 와서 저는 스피킹 스터디를 하고 있는 중이었고, 남편도 집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벨소리가 나서 UPS겠거니, 뭔가 배달 왔나 보다 했어요. 저희 동네는 배달해놓으며 벨을 누르고 가요. 둘째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났고 무슨 말소리도 들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아이는 제가 스터디 중이니 기다렸다가 스터디가 끝나니 문을 열고 얘기해요. "엄마, 옆집 할아버지 돌아가셨대." 할아버지 친구라고 하며 저희집에 오셔서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해요. 아이도 너무 놀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대요.  

 

 얘기를 듣고는 남편이랑 달려갔어요. 보스턴은 4시가 넘어가면 어둑해져요. 집안에 불은 환히 켜져 있었고, 아무리 벨을 눌러도 노크를 해도 소리가 없어요. 사실 이번주에도 몇 번 제가 저녁에 불이 켜졌는지 확인하고 찾아가기도 했어요. 집에 불은 켜져 있지만 할아버지 소리가 나지 않아 아마도 안쪽 주방에 계신가 보다고 생각했었어요. 주방이 집 안쪽에 있어 평소에도 할아버지가 현관까지 나오시려면 시간이 꽤 걸리셨어요. 그래도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안도했었어요. 걱정되어 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셔서 녹음을 몇 번 남겼었어요.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름과 살고 있는 집, 이게 다예요.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옆집에 살고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할아버지는 개인적인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나이가 얼마나 되시는지, 결혼은 하셨었는지, 자식은 있는지 말씀을 안 하셔서 몰라요. 저도 묻지 않았어요. 남편이나 저나 개인적인 호기심을 채우려고 누군가에서 질문하지 않아요. 사정이 있으시겠지 싶어서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살았었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집이라는 것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이사와서 살고 계시다고 하셨어요. 몇 번 여동생과 조카 얘기를 한 적 있었어요. 그외에는 정말 아는 게 없어요. 제가 아는 미국 친구들과 달리 정말 개인사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무척 후회가 들어요. 그래도 혼자 살고 계시니 비상연락처 정도는 제가 알고 있어야 했는데 싶어서요. 

 

 할아버지는 지병이 있으셨어요. 그런데 그것또한 자세히 말씀을 안 해주셔서 정확히는 몰라요. 그래서인지 먹는 걸 조심하셨어요. 한국음식을 나눠드리기에는 조심스러워 먹을 걸 사서 찾아가면 한 두 개 덜어놓으시고는 늘 도로 돌려주셨어요.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며 자신은 괜찮다고 충분하다고요. 제가 장 봐올 때, 할아버지가 밖에 계시면 저는 주로 코스코에서 박스로 과일을 사 오니 할아버지께 몇 개 그 자리에서 드려요. 그러면 하나만 받으세요. 어느 여름 날 복숭아를 종류별로 박스채 사 왔던 때라 "이건 백도고, 이건 황도고, 이건 넥타린이니 하나씩 맛보세요." 하고 챙겨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욕심도 없으시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오래된 낡은 차를 직접 수리하는 걸 즐기는 맥가이버 할아버지 셨어요. 

 

 날이 따뜻한 날에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밖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곤 해요. 매일 마주치는 우체부와 얘기를 나누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담소를 즐기셨어요. 그러다 코로나 이후로는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시는 할아버지가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시겠지하는 믿음이 있었어요. 더군다나 날이 추워지니 바깥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줄어들고, 저도 가끔 문자로 안부를 대신하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자가 되지 않아 전화를 드렸던 적이 있어요. "Your message could not be delivered to this non-wireless number +000-000-0000" 뜨고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젠 필요 없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아마 할아버지는 천천히 주변정리를 하고 계셨나 봐요. 

 

 할아버지는 저희 동네에서 제일 착한 오지라퍼셨어요. 언제나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그 앞에 계셨고 모르는 일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갑자기 정전이 되거나 동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연락드리면 척척 알려주시곤 했어요. 지난 여름, 밤새 내린 폭우로 집 뒤쪽 나무가 쓰러져 지붕 위를 덮은 일이 있었어요. 제일 먼저 할아버지께 연락을 드렸고,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동네 어느 집에서 지붕을 새로 했는데 물어보겠다 하시고는 알아봐 주시고 저희 집으로 와서 같이 봐주셨어요. 지붕수리 업체에 문의를 해야 할지, 나무 자르는 업체에 문의를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같이 살펴봐주시고 늘 도와주셨어요. 추운 겨울날 차가 방전되면 할아버지가 점프업해주시고요. 저희 가족이 처음 하우스로 이사 오고 낯선 동네에 적응하며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세요. 

 

 그러고보니 할아버지와 추억이 참 많아요. 이 집에 이사 오고 어느새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처음 이사오자마자 동네 블락파티에서 사람들 소개해주시고, 제가 집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 나오셔서 얘기 나누곤 했어요. 사실 처음엔 영어로 내내 말해야 하니 살짝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제가 밖에 나오면 "헬로우~"하며 어디선가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요. 말씀을 한 번도 한 적 없으셨지만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그립고 외로우셨던 것 같아요. 

 

 아이들 픽업해 집에 도착하면 저는 저녁을 챙기거나 아이들 액티비티를 준비해 나가야해서 바쁠 때가 많았어요. 할아버지는 늘 얘기하고 싶어 하셨지만 조금 얘기하다가 바쁘다고 말씀 드릴 수 밖에 없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투표하는 날이라고 자신은 지금 막 하고 오는 길이라며 미국 시민으로서 선거는 꼭 해야 한다고 하시고 같이 가주시기도 하고요. 모든 일에 항상 적극적이셨어요. 밝은 모습으로 "난 늙어서..., 나이 먹어서... 힘들어..." 이런 말씀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그러니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 지내시면서도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가지 않으셔도 될만큼 생활이 가능하셨던 듯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풍채도 좋으시고, 늘 씩씩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셔서 얼마 전부터 할아버지 기력이 약해진 듯한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날이 추워지니 바깥 활동이 줄어들고, 둘째가 수험생이다보니 또 영어공부한다고 스터디를 이끌며 저는 코로나 시기를 맞아 더 바빠졌어요.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따뜻한 봄이 되면 할아버지가 밖에 자주 나오시니 그땐 정말 얘기 많이 나누리라 생각했었어요. 그때쯤이면 둘째 입시도 끝났을 테고 저도 여러 가지로 여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팬데믹 기간 동안 영어가 늘어서 자신있게 할아버지랑 얘기도 나눌 수 있으리란 생각에 혼자 신나기도 했어요. 늘 저에게 영어 하나라도 알려주시려고 노력하시고, 용기를 주셨어요. 코로나 초기에 뉴스 보며 시간별로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수 걱정하니, 지금이 영어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 오히려 영어공부에 집중하라고 말씀을 해주시곤 했어요. 제 영어공부를 위해 늘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제가 영어 스피킹 그룹을 만들었을 때나 매직낭독을 시작했을 때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무엇보다 늘 저보고 쉬운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강조하셨던 분이라 영어낭독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정말 잘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팬데믹 기간 동안 저는 영어공부에 집중하며 영어가 많이 늘었어요. 무엇보다 매직낭독을 하면서 두서없이 공부해서 체계없던 영어에서, 영어문장 구조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영어 실력에 가속도가 붙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매직낭독을 마치고 나면 좀 더 자신 있게 영어를 할 수 있겠다 내심 기대하며 할아버지 얼굴보고 맘껏 얘기 나눌 날을 기다렸어요. 마지막으로 지난주 낙엽청소해드린 게 다예요. 할아버지가 집을 나서면서 집 앞이 깨끗해진 걸 보셨겠죠. 

 

 미국에서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시는 걸 본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장례절차가 어찌 되는지, 저는 영화나 TV 쇼에서 본 게 다예요. Six feet under라는 미드를 통해 한국과 다른 미국의 장례문화를 알았어요. 할아버지 친구분과 연락이 닿기를 바라며 할아버지 집 앞에 노트를 남겨놓으려고 해요. 집앞을 지날 때면 할아버지 모습이 자꾸 생각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영어공부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할아버지 만나면 하늘나라에서 영어로 얘기 나누려고 해요. 

 

 "ㅇㅇ, 많이 그리울 거에요."

   R.I.P

(Rest In Peace: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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