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양궁을 해요. 이번 주 아이 학교 봄방학이기도 하고, 마침 날씨가 좋아서 코치가 아웃 레인지에서 보자고 해서 다녀왔어요. 그동안은 집에서 줌으로, 또는 아이가 연습한 영상을 보내면 그에 대해 코칭해 주셨어요. 보스턴 지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처를 다른 지역보다 나름 잘하고 있는 듯해요. 모두가 조심조심하고 있어요. 마스크도 잘 쓰고, 사람들 대부분 정해진 규칙과 규정을 잘 따르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활동들이 일 년 넘게 온라인으로 대체되었어요.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둘째는 양궁장에 가지 못했어요.
물론 양궁은 시즌별로 인도어(Indoor), 아웃도어(Outdoor) 스포츠로 즐길 수 있어요.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 4월 중순까지 함박눈이 펑펑 내린 보스턴이에요. 아웃 레인지에서의 양궁은 꿈도 못 꾸죠. 보통 아웃도어 개장은 야외수영장 개장 날짜와 같은 5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미국의 전몰장병 추모일로 5월 마지막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를 기점으로 하곤 해요.
사실 땅덩이가 큰 미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즐기는 스포츠가 달라요. 그런걸로 따져본다면 양궁은 보스턴에서 하기에 취약한 운동이라 할 수 있어요. 실제로 내셔널 대회에 가면 미국 전역에서 아이들이 오는데 캘리포니아 쪽은 한겨울인 1월에도 아웃도어 대회를 위해 아웃 레인지에서 연습을 한다고 해요. 보스턴에서는 현실 불가능한 얘기죠. 그러다 보니 겨울에 열리는 인도어 대회에서의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요. 양궁과 인연을 맺은 건 큰아이 4학년 때, 작은 아이 2학년 때였어요. 그러고 보니 오랜 시간 양궁을 했네요. 네, 저나 아이들이나 뭔가 한번 시작하면 오래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모르고 시작했어요. 아주 가볍게 소풍 가는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전날밤부터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타고 40여분을 운전해 양궁장에 가려니 살짝 겁도 나고, 설레기도 했어요. 코로나바이러스로 트래픽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양궁장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공간을 많이 필요로 해서 주로 외곽 지역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오고 가고 시간이 많이 걸려 그게 좀 쉽지 않아요. 특히나 다른 활동들을 많이 해야 하는 하이스쿨 시절까지 지속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큰아이는 어쩔 수 없게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유로 10학년 올라갈 때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보다 나이 어린 둘째는 조금 시간 여유가 되니 지속할 수 있었고, 태어난 지 8개월 1일 되는 날부터 걷기가 아닌 뛰어다닌 경력이 있어서 인지 운동 신경이 꽤나 발달해 운동을 잘해요. 또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집에서 온라인으로도 계속할 수 있어 가장 바쁘고 힘든 주니어 하이까지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무엇보다 아이는 양궁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해요. 과녁을 보며 집중하는 명상 아닌 명상을 하나 봅니다.
이 양궁장 가는 길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운전하고 가면서 사진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사계절 내내 어찌나 멋진지요. 그래도 운전하고 가면서 사진을 찍을 순 없고, 양궁장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 몇 장 올려봅니다.
양궁은 활을 가지고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과녁에 맞히는 스포츠에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운동 종목이죠.현재 올림픽에서는 리커브 보우(Recurve bow)를 사용하고 있어요. 저희 아이도 리커브 보우를 사용하고요. 미국에서는 컴파운드 보우(Compound bow)를 취미로, 또 대회를 나가기 위해 많이 하기도 해요. 컴파운드 보우는 좀 더 장비빨(?) 느낌이 나요. 부품 업그레이드를 많이 할수록 점수 내기가 좋아요. 무엇보다 장비빨의 도움으로 정확한 조준이 가능해서 경기용보다는 사냥용(hunting)으로 많이 쓰기도 하고, 실제로 컴파운드 보우를 주로 가르치는 양궁장에 가면 사냥 대회도 있고, 이를 광고하기도 해요. 또 미국에서 컴파운드 대회는 기업 스폰이 많아 대회 우승 상금이 어마어마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를 목적으로 컴파운드 보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양궁은 굉장히 섬세한 운동이라 할 수 있어요. 또 올림픽 대회 출전하는 운동 종목 중에 가장 많은 부품이 필요한 운동이라 해요. 양궁에 필요한 부품들을 찾아 인터넷에 있는 이미지 담아봤어요.
리커브 보우, 라이저, 어퍼림, 스트링, 레스트, 조준기, 스테빌라이저, 쿠션 플랜저, 클리커, 화살, 퀴버, 암가드, 체스트 가드, 슈팅 글러브, 핑커 탭 등등 작은 부품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양궁은 활과 화살이지하고 생각했다가 처음 장비 구입할 때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어요.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회에 나가면 신경전이 어마어마해요. 양궁을 흔히 멘탈게임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대회 출전한 선수들이나 그 부모님들이 라이벌 선수 보우(bow)나 조준기(sight)를 일부러 몰래몰래 툭 치고 다니기도 해요. 그러면 그 선수는 자신에게 딱 맞게 준비한 것이 흔들려 당황하게 되고 당연히 좋은 성적으로 연결되기도 쉽지 않겠지요. 이런 얘기를 듣고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실제로도 종종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대회 나가면, 특히나 선수들이 많이 참여하는 큰 대회에 가면 부모는 장비를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 해요. 암튼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아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올림픽에서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세계 강대국들이라고(쓰고 특히 미국이라고 할께요) 많은 노력을 해온 걸 아실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양궁은 세계 최강! 한국 최고의 올림픽 효자 종목이라 할 수 있죠. 어떤 종목보다도 압도적인 위상과 성적을 자랑하죠. 한국 사람들이 양궁을 잘하는 이유로 '하느님이 보우(bow)하사~' 애국가에서부터 나온다는 얘기도 있고, 한국의 양궁 역사를 말할 때, 고구려 시대의 벽화를 보여주기도 하죠. 희한하게 미국에서조차 양궁을 배우는 한국 아이들이 성적도 좋아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한국인 유전자(DNA)에 양궁 DNA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진지하게 하곤 해요.
또 자랑스럽게도 미국 올림픽 양궁 대표팀 감독님(USA Archery Head National Coach)도 한국분이세요. 이기식(Kisik Lee) 감독님과는 내셔널 대회에 참여 후 인연이 되어 따로 코칭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어요. 미국 내에서 조차 한국의 양궁 위상을 알려주는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현재 저희 아이 코치는 74세의 미국남자분이세요. 저희랑 인연을 맺은 게 2015년 부터니 벌써 7년이 되었네요. 저나 아이가 정말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이세요. 그 연세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고,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시라 좋은 에너지 듬뿍 나눠주세요.
오랜만에 양궁나들이를 하고 오니 저나 아이나 기분이 좋아졌어요. 아이가 코칭받는 내내 저도 옆에 서서 같이 봐주느라 힘이 조금 들긴 했어요. 코치가 예전부터 저희 아이에게 "You're lucky. You have a great mom."라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대부분 부모님들은 각자 앉아서 자기일 보거나 아니면 아이만 드랍하고 가든지 하는데 저는 아이가 코칭 받는 시간동안 같이 서서 지켜봐주고 필요하다하면 영상도 찍어두고, 메모도 하고 그러거든요. 또 이 코치님이 워낙 말씀이 많으세요. 농담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원어민 영어 교실 갔다 생각하고 영어 리스닝, 스피킹 연습하고 오는 시간이기도 해요. 코로나 전 일주일에 두 세번씩 양궁장에 가면 그동안 영어가 얼마나 늘었나 테스트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 코치의 농담까지 다 알아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코치님이 '말씀이 좀 많으셔' 라고 아이한테 얘기했더니 미국사람들 특성이래요. 한국선생님들은 수업내용만 열심히 가르치는데 반해 미국선생님들은 정말 여러 말씀을 많이많이 하신대요. 미국문화가 그렇다고요.
사실 너무 오랜만에 간지라 그런 감을 잃어버려 가방 안에 영어 공부할 것들을 잔뜩 챙겨서 갔었는데 하나도 꺼내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왔어요. 그래도 아이와 이런 시간을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워져요. 양궁장 가는 길이 멀지만 그 시간만큼은 둘째 아이와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고, 아이가 양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둘째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기도 해요.
"I’m not the perfect mom in many ways, but I try my best every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