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명랑 쾌활, 우리집 까불이, 친칠라계의 ADHD가 아닐까 추정되는 똥칠이가 어제 저녁부터 아파보여요. 남편이 출장 다녀와서 저녁먹고는 평소처럼 케이지 청소를 해주는데 갑자기 일층에서 이층으로 점프하고 올라가다 떨어졌어요. 그 뒤로 아픈 듯 끙끙 거려서 혹시나 팔다리를 다친 게 아닐까 확인해 봤어요. 다행히 팔다리에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도 그 뒤로 밥도 먹지 않고 축 늘어져 있어요.
똥칠이는 너무나 활동적이고 건강한 친칠라라서 지금까지 한번도 아픈 적이 없었어요. 6년동안 병원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밥도 잘먹고, 호기심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케이지 여는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버선발로 달려와서 반기는 아이에요. 까칠한 모모와 다르게 점프해서 막 사람한테 안겨요. 밖으로 꺼내 놀게 해주면 어느새 팔에 안겨있는 그런 아이에요.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 절대무적 천하장사 이미지인 똥칠이가 아프다니 상상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축 늘어져서 고등어 자세로(배는 하얗고 누워있는 모습이 고등어 같다고 둘째가 저렇게 누워서 자면 고등어 자세로 잔다고 이름 붙였어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끙끙 앓는 듯한 모습으로 있어서 너무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동물병원에 가려고 케이지에서 꺼내서 잠시 쇼파 위에 올려놨는데 생각보다 멀쩡해 보여요. 이런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 오버하는 거다 그래서 친칠라 특별영양식 Critical Care를 물에 개어서 먹이고(두 세입 밖에 안 먹었어요) 가스드랍을 먹이고 재웠어요.
그리고 간간이 커튼을 열고 체크를 해보는데 가뿐 숨을 몰아쉬며 계속 고등어자세로 누워있어요. 너무 걱정이 되어 남편과 동물병원을 가보기로 합니다. 시름시름 앓고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너무너무 마음 아프고 후회할 것 같아 일단은 병원을 가보자고 했어요.
지난번 모모가 다녀왔던 동물병원으로 갔어요. 24시간 예약없이 Walk-in으로 갈 수 있는 동물병원이에요. 접수를 해야 하는데, 이름이 똥칠이잖아요. 미국사람들이 어떻게 똥칠이 이름을 부르겠어요. 똥칠이를 똥칠이라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할 수 없이 제니에서 이름을 바꿀 때 고려했던 이름 제러미(Jeremy)라고 했어요. 똥칠이 미들네임, 미국이름은 제러미에요. 그런데 한번도 제러미라고 불러본 적 없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똥칠이를 제러미라고 부르는데 어찌나 낯설던지요. 똥칠이도 자기를 부르는지 몰랐을 거에요.
접수하고 진료실에서 수의사 선생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똥칠이 사진을 찍었어요. 또 멀쩡해 보여요. 멀쩡해 보인다해도 평소같았으면 저렇게 택시에 얌전히 있지 않고 점프해서 튀어나와 벌써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을 거에요. 예전에 모모가 동물 병원에 가서 진료기다릴 때 하고 비교되는 모습이죠. 이정도가 똥칠이 아픈 모습이에요. 평소 똥칠이의 모습을 수의사 선생님들은 모르니 혹시나싶어 동물병원 가기 전에 케이지에서 고등어 자세로 누워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갔어요. 그래야 수의사 선생님께서 믿을 것 같아서요.
드디어 수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에 들어오셨어요. 먼저 체중재기부터, 체중을 재는데도 똥칠이는 가만있지를 않습니다. 똥칠이 체중은 870g으로 과체중, 비만 친칠라에 속해요. 지난번 모모체중은 705g인 것에 비하면 똥칠이는 친칠라치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다이어트와 운동이 시급합니다.
청진기로 심장박동 확인하고요. 진료 중에 똥칠이가 하도 움직여서 이번에는 한 분은 똥칠이를 안고서 다시 청진기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친칠라는 열을 어떻게 재나 했는데 항문에 체온계를 넣어 재었어요. 똥칠이 체온은 100.5℉, 작은 동물들은 보통 체온이 높은데 똥칠이는 조금 낮은 편이라고 해요. 심장이나 호흡기나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심장박동수가 빠른 편이라 최근에 똥칠이 환경이 달라진 게 있냐고 하셨는데 아무것도 다른 게 없었거든요. 작은 동물일수록 예민한 편이라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디스트레스가 아닐까 하셨어요.
여기서 디스트레스(Distress)란 나쁜 스트레스로 신체적, 감정적 문제를 가져오는 스트레스를 디스트레스라고 부릅니다. 아마 남편이 케이지 청소할 때 점프하다 떨어지면서 좌절을 했을까요? 예전에 똥칠이는 점프도 너무 잘하고, 정말 날쌘돌이였거든요.
여튼 먹는 거 좋아하는 똥칠이인데 어젯밤부터 밥먹는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난번에 모모 아플 때 병원에서 받아온 친칠라 특별영양식 Critical Care를 주었는데 그것조차도 두 세입 먹고는 먹지를 않았어요. 특별식을 챙겨먹인 건 잘했다고 하셨고, 탈수(Dehydration)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수액주사를 맞았어요. 사람의 경우에 탈수치료할 때 경구수액을 보충하듯 친칠라도 같은 방법으로 탈수치료를 한다고요. 친칠라 목덜미에 버터플라이(나비모양) 바늘을 꽂아 수액을 맞았어요. 아래 사진에 보면 초록색 날개모양의 주사기가 특이해 보여요. 주사 다 맞고 똥칠이 목덜미를 쓰담쓰담 해주셨어요.
처방약 기다리며 잠시 펫 택시에서 나와 노는 똥칠이,
잠시 진료실 밖의 풍경을 보는데 노견인 듯 보이는 대형견이 바닥에 누워서 꼼짝도 않고 링겔을 맞고 있어요. 주인은 연신 반려견을 쓰다듬어 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프면 찾아가는 병원이니 안타까운 장면을 목격하는 곳입니다.
그러는 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처방약을 챙겨서 오셨어요. 이미 친칠라에게 약 먹이는 걸 알고 있기에 약 먹이는 방법을 따로 보여주지 않았고요. 다만 항생제 열흘치를 처방해주니 호전되어 보인다고 중간에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다 먹게 하라고 하셨어요. 안그러면 내성이 생겨서 다음에 항생제가 듣지 않을 수 있다고요. 사람하고 똑같다고 합니다. 항생제도 용량만 다를뿐 사람이 먹는 항생제랑 같다고 해요.
이 동물병원에 두 번째 방문이라고 남편이나 저나 이제 익숙합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있었어요.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보이고요. 리셉셔니스트는 구글에 리뷰를 남겨달라는 깨알홍보도 해주시고요. 한쪽 벽에 고양이가 동물병원에서 진료받는 사진액자가 귀여워서 한 장 찍어보기도 했어요.
이렇게 똥칠이의 병원 첫 방문이 있었습니다. 탈수치료를 하고 와서인지 똥칠이는 집에 와서는 조금 활발한 모습을 보였어요. 아직 밥은 잘 먹지 않는데 약먹고 쉬면 점점 기력을 회복하리라 믿어봅니다. 똥칠아, 빨리 나아서 예전처럼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