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칠라 집 계단커버 만들기와 싱어 재봉틀의 추억

오랜만에 재봉틀을 꺼내서 친칠라 보이들 집 계단 커버를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작은 담요를 싹둑싹둑 잘라서 드르르륵 박음질했어요. 3층 집에 사는 친칠라 보이들이라 계단 커버가 세 개 필요해요. 코로나 기간 동안 미싱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으니 2년이 훌쩍 지났네요.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것들을 빨아서 돌려쓰고 이제 많이 낡아져서 새로 만들어야지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꽤 오래 재봉틀을 사용하지 않아서 우선 세 개 만들어봤어요. 그리고는 얼른 계단에 씌워보고 마음에 들어서 마저 남은 담요로 모두 계단 커버를 만드니 총 10개가 나왔어요.

친칠라는 설치류라서 이를 꼭 갈아야 해요. 그래서 아래에서 보듯이 이갈기 전용 ledge를 꼭 준비해줘요. 그리고 아무 천이나 사용하기보다 플리스 천을 추천하고요. 안 그러면 친칠라들이 이로 갉아서 천에 구멍이 숭숭 뚫릴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차 안에서 썼던 플리스 담요가 친칠라 용품 만들기에 딱 좋았어요.

오랜만에 재봉틀 꺼내쓰니 이것저것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네요. 사실 저는 직선 박기만 할 줄 알아요. 그런데 직선 박기만 해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남편이나 애들 옷도 수선하고요. 또 저는 킹사이즈 듀벳 커버를 사서 직선 박기 해서 베드 시트를 만들어요. 그리고 세트로 베개커버도 만들고요. 세일하는 베딩은 짝이 잘 맞지 않는데 이렇게 하면 나름 완성된 침구세트로 변신합니다.

싱어 재봉틀을 보면 생각나는 언니가 있어요. 미국에 오던 첫 해, 오자마자 큰아이와 함께 프리스쿨 아트 클래스에 다니는 한국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잘 놀아준 덕분에 자연스럽게 엄마들까지도 친해졌지요. 그 아이의 엄마는 대학 때 의상 전공을 하셨고, 패션 관련 일을 하셨던 분이라 감각과 솜씨가 뛰어나신 분이셨어요. 집에서 미싱으로 딸아이 옷이며 소소한 용품들 만들며 드넓은 옥수수 밭만 가득한 어바나-샴페인에서 버텨냈다고 말하는, 이미 미국 생활 8년 차로 영어도 잘하셨고, 성격도 좋은 언니셨죠. 미국에 갓 와서 물정 모르고 어리버리한 저를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가족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미국 생활에서 만남과 이별이 익숙하지 않았던 때라 어찌나 허전하던지요. 함박눈이 펑펑 오는 토요일 아침, 한국으로 떠나는 언니네 가족을 공항에 가서 배웅하고 싶었지만 한글학교 수업을 해야 했어요. 수업 중 언니네 가족이 떠나는 시간, 창 밖을 바라봤던 기억이 나요.

집안살림을 처분하면서 딸 둘 엄마니까 유용하게 쓸 거라며 미싱을 저에게 주셨어요. "언니, 미싱 주셔도 저 어떻게 쓰는지 몰라요"했더니 "그냥 설명서 읽고 하면 돼."라고 아주 쿨하게 말씀하셨지요. 언니 말대로 설명서 꺼내서 읽고 저도 이것저것 만들며 지냈어요. 싱어 미싱이 저와 함께 한지 어느새 15년 가까이 되었네요. 지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뭔가 남겨주고 가시면 그 물건을 보면 그때 당시의 추억들이 떠올라요. 오늘도 어김없이 재봉틀 꺼내 들며 언니네 가족도 생각나고, 그 시절 함께 지냈던 일들이 스쳐갔어요. 그리고는 잠시 추억에 빠졌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도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