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큰아이 스무살 생일이자 저희 가족이 미국 땅 밟은 지 16년 되는 날이에요. 16년 전 큰아이 생일날 한국을 떠나 대략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2월 13일 큰아이 생일이었어요. 어린 두 딸아이와 한국과 미국의 시차 이야기를 하며, 아직도 생일이라고 하하호호 웃고,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미리 예약해 둔 밴에 가족별로 수하물 2개씩, 러기지 8개를 가득 채우고 시카고에서 어바나-샴페인으로 가던 길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휑한 벌판 길, 시카고와 어바나-샴페인 두 시간 거리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었어요. 그때는 이렇게까지 미국에 오래 살게 될지 몰랐어요. 2-3년 정도 즐겁게 미국 생활하며 지내다가 남편 포닥생활이 끝나면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인생이 맘먹은대로 되는 게 아니지요. 정말 제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미국생활을 이렇게나 오랫동안 하고 있습니다. 당시 네 살이었던 큰아이는 스무살이 되었고, 19개월 아가였던 둘째는 열일곱살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크는 동안, 그 세월 동안 저는 무얼했을까요? 가끔은 미국에 와서 아무것도 한 것없이 나이만 먹었구나하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질 때가 있어요.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이 많아지면 행복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하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아이들 키우고 열심히 살았다 싶어요. 내 나라 아닌 남의 나라에서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 정도면 잘 살아왔노라 스스로 위로도 해봅니다.
지난 16년 동안 미국생활하며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영어였어요. 처음엔 미국땅만 밟으면 영어가 절로 될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하면서 좌절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도 못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 반쪽자리 삶이 한때는 정말 큰 스트레스였어요. 그렇다고 손 놓았던 영어공부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럴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그래서 영어공부를 진득하니 앉아서 하기보다는 영어실력을 빨리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며 요령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데 그때는 제가 그랬어요. 영어는 잘하고 싶은데 영어공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으니까요. 이런 고민을 하니 남편이 원어민 튜터를 받아보는 걸 제안했어요. "맞아, 바로 이거야.' 하며 원어민을 만나기만 하면 영어가 절로 해결될 거란 어리석은 희망을 또 가졌답니다.
사실 원어민 튜터를 만나면 나의 부족한 영어가 해결될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런데 역시 내 영어공부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해결해야 함을 또 깨닫습니다. 저는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영어공부를 하면서도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요. 영어는 잘하고 싶어서 유행하는 영어공부법들을 찾아보고 따라해봤어요. 그래서 사전에 줄 그어가며 베껴도 써보고, 문법책 필사도 하고, 단어책도 필사해보고, 제 수준에 맞지 않는 영어소설책도 읽어봤고요, 많이 듣고 보면 좋다길래 주구장창 뭔 소리인지 알지 못하고 들리지도 않는 라디오도 들어보고, 미드 보기도 해보고, 쉐도잉도 해보고요, 영어 유튜브 강의도 좋다고 하면 이것 봤다 저것 봤다 했고요. 동네 도서관 프로그램도 다녀보고요.그런데 모두 재미없어서 오래 못했어요. 그리고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니 더 효과좋은 영어공부 방법이 없나 찾아보고 좋다고 하면 이거 하다말고, 저거 하다말고 그렇게 지냈어요.
암튼 제 나름 노력을 했지만 저에게 맞는, 제가 하고싶은 영어는 아니었어요. 시간은 흘렀지만 제 영어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좌절되었다고 할까요. 이렇게 해도 안되는구나, 난 영어는 안되나 보다, 포기해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영어를 너무 모르니까, 영어가 진짜 재미없었어요. 사실 억지로 앉아서 꾸역꾸역 했는데 얼마나 재미없던지요. 무조건 인풋을 늘려야 함을 아는데 정말 재미가 없어서 못하겠다 싶었어요. 사전 베껴쓰기 해봤자 나가서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는걸요. 잘못된 영어공부 방법임이 확실하죠. 그만큼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고 어리석었어요.
미국생활 16년차, 여전히 제 영어는 만족스럽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제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나에게 필요한 영어는 어떤 것인지는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영어공부를 하는 분들께 과거의 저처럼 영어공부하지 마시라는 말씀은 자신있게 드릴 수 있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매직낭독하러 가는 저에게 방송반이냐며 놀리는 남편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요. 밖에는 종일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커피랑 따뜻한 물 옆에 놓고 매직낭독을 하는데 오늘따라 낭독하면서 어찌나 재미있었는지요. 문장구조도 보이기 시작하니 술술 읽어지고, 문득 처음 매직트리하우스를 소리내어 읽던 제 모습을 떠오르면서 그때랑 비하면 지금은 용되었구나 싶어요. 저는 자료준비하면서 1기 매직낭독 회원님들보다 낭독을 미리해요. 조금이라도 먼저해야 한가지라도 더 회원님들과 나눌 수 있어서요. 제가 공부하고 찾아본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있고 또 재미도 있어요. 매직낭독이 제 인생 영어공부구나 싶어요. 이렇게 즐기며 재미있게 영어공부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지난 미국생활 16년동안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또 영어얘기로 시작해서 영어로 끝나는 기승전영어가 되고 말았어요. 그만큼 영어가 제 삶에 중요하다는 걸 또 이렇게 알아갑니다. 오늘 큰아이 생일이라 생일 축하 메시지 보내고, 잠시 얘기 나누고, 남편과도 그동안 낯선 나라 미국에서 생활하느라 수고 많았다고 서로 토닥토닥하며 얘기 나눴어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또 어디서, 어떻게 지낼지 모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또 열심히 살아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작년 이맘때 블로그를 새로 정비하면서 미국 생활 15년 아줌마라고 인사하고는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났어요. 이제는 미국생활 16년 차 아줌마로 제가 있는 곳에서, 제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지내보려 합니다.
무엇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항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하죠. 컴퓨터 모르는 컴맹아줌마가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 있는 것도 해보기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래도 하나씩 배워가며 하고 있고, 저에게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영어도 꾸준히 공부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니 재미있어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배움의 기쁨을 알아가며 스터디 회원님들과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하는 요즘, 몸은 바빠도 마음은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내년 이맘때는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서 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강히 지내세요.
하루종일 눈이 펑펑 내리는 보스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