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킹인잉글리쉬~*

 영어공부 왜 하세요? 저는 학창 시절에는 성적 잘 받으려고 영어공부한 아줌마예요. 그러니 영어시험 성적은 좋았지만 원어민 앞에서는 실실 웃고만 있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던 아줌마였어요. 아마 한국에 살았다면 이렇게 지금처럼 영어공부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겠죠. 또 영어공부를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며 좀 여유 있게 취미처럼 공부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절실하게 영어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더 편한 마음으로 영어공부를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국에 계시면서 영어공부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미국에 오니 영어를 써야만 하는 그 상황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영어가 더 싫었던 것 같아요. 영어공부를 꼭 해야지 하면서도 영어공부 하기 싫은 마음이요. 한때는 내가 원해서, 내 의지로 미국에 와서 사는 게 아닌데 영어 좀 못하면 어때, 남편 때문에 미국에 와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영어 못하는 것을 당당한 변명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어요. 또 한편으론 미국에 오자고 한 남편을 원망도 했었고요.

 

 영어 못하는 시절에는 온라인으로 산 물건에 문제가 있어도 리턴하는 과정이 번거로워 그냥 그 물건을 썼던 적도 있고, 남편에게 부탁해서 해결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남편에게 부탁하는 것도 싫었고 미안했었어요. 언제나 잘 도와주는 남편이라 도와주기는 하지만 가끔씩 좋은 표정이 아닌 남편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기도 했었어요. '내가 누구 때문에, 미국에 와서 살면서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데... 당신이 도와줘야 하는 거 당연한 것 아니야?' 하는 그런 마음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던 시절이고 남편에게도 참 미안해요. 서양사람들에 비하면 체구도 작은 동양 남자가 가장이라는 무게로 미국 회사에서 일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국 생활하며 영어 못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 철없는 아내를 어찌 보았을까 싶어 부끄럽기도 해요. 그런 아내에게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얘기조차 못했겠죠. 영어로 처리할 일이 있으면 고스란히 남편이 다해야 하니 남편의 부담은 컸을 테고요. 그래도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도와주고 든든히 옆에 있어 준 남편이 참 고마워요. 

 

 미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에서 보다 영어가 절실한데 영어가 싫어지니 그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영어공부를 해도 잘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아 그런 것 같아요. 영어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나 대신 남편이 대신해 줄 수 있었고,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어려서 제가 영어를 못해도 미국생활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살만했어요. 그러다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부터는 학교에서, 아이들 액티비티 등등에서 매번 남편의 영어 도움으로 미국 생활을 할 수 없겠구나, 또 언제까지 영어로 스트레스만 받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혼자 이런저런 방법으로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원어민 튜터도 받아보고, ESL 클래스도 다녀었어요. 그래도 영어가 늘지 않았어요. 제가 배정받은 ESL 클래스는 저녁 시간에 가능했었고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는 동안 가야 해서 남편 시간을 뺏는 듯한 미안한 마음에 오래 할 수 없었어요. 또 원어민 튜터를 생각했을 때는 원어민에게 영어수업을 받는다니, 누구나 그렇듯 큰 기대를 했었지만 제 생각같이 영어가 늘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주도적으로 영어수업을 했어야 했는데 원어민 튜터에게 영어를 배울 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내 영어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 준 경험이기도 해요. 비록 영어는 늘지 않았지만 그런 경험으로 유명한 학원강사에게, 원어민 튜터에게 영어수업을 받아도 내 영어 실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영어는 내가, 내 입으로 한 번이라도 영어를 읽고 말해야 하는 시간 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영어때문에 미국에 사는 게 싫어졌을 때, 저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되었고 되도록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줄이면 되니 어찌 보면 제가 제일 편한 삶이었다고 생각해요. 남편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저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미국에 오는 그 순간부터 한국에서보다 더 치열하고 전투적인 삶을 살았을 테고,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아침이면 일터로 나가야만 했으니까요. 아이들 역시, 백인아이들이 대부분인 낯선 학교에 가야 했고요. 아마 그런 걸 생각하면서부터 제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아요. 저야 영어 때문에 힘들면 밖에 나가지 않고 숨으면 되는데 남편이나 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니 남편은 일터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건강하게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감사했어요. 

 

 

 

 그 마음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아무 생각없이 '영어공부, 무조건 해야만 해'하는 마음에서 제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죠.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내 마음 하나 고쳐 먹고 나니 우리 가족 전체에 변화가 찾아왔어요. 가정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하는 남편에게 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니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따뜻한 말을 전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역시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했어.'라고 진심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힘들지만 저 스스로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이나 두 딸아이 역시 제가 영어공부하는 걸 많이 도와주었어요. 모르는 표현들, 한국말로는 이러는데 영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영어에도 그런 표현이 있는지... 스피킹 그룹 운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 특히 NPR 팟캐스트로 영어 공부하면서 해석을 해서 블로그에 정리할 때 아이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었어요. 팟캐스트 특성상 구어체 형식으로 때로는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로 고민하고 있을 때면 "엄마, 대화할 때 특히나 원어민들은 문법 파괴해가며 표현을 많이 해요."라고 바르게 알려주고,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는 표현들을 원어민 영어를 구사하는 딸아이들이 영어와 한국말로 알려주었어요. 어찌 보면 두 딸아이들이 저에게 가장 훌륭한 영어 선생님인 셈이에요. 제가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는 아이들과 나눌 얘기도 더 많아졌어요. 

 

 남편은 어제 회사에 가는 날이었고 연휴를 앞두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도착했어요. 제가 스피커 폰으로 아이들 병원예약 변경과 약국에 전화해 처방받은 약의 진행상황을 묻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어요. 영어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 내일은 더 조금더 나아지는 모습을 꿈꾸며...  사랑하는 남편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고, 나이 들어서 아이들에게 영어 못하는 엄마로 마냥 의지하고 싶지 않아요. 더 나아가 나중에 손주들에게 영어책 읽어주고, 영어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그런 할머니를 그려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내일도 영어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에요.

 

 저 진짜 영어 싫어했던 아줌마인데 지금은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주변에 영어공부 같이 하자고 얘기할 만큼이요. 처음 영어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영어가 절실히 필요해서 였지만 어느 순간 영어공부가 재미있어졌어요. 이제는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닌, 영어와 영미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어 즐기고 있어요.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같이 영어공부하자고 말하고 또 좋은 방법이 있으니 나누고 싶고, 제가 공부해서 정리한 게 도움이 된다고 하시면 좋기도 해요. 예전에 영어를 싫어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영어공부를 하고 있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영어가,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에서 영어공부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참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모두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 보내세요.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이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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