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얼마 전에 이직을 했어요. 그러면서 의료보험이 바뀌게 되었는데 의료보험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일이 정말 많아요. 남편회사가 말하자면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고, 보스턴에 지사가 있어요. 감사하게도 두 군데에서 오퍼를 받았고, 남편은 보스턴에 살고 있으니 보스턴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걸로 했어요.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를 하지만 회사에 가게 될 일이 그래도 한 번쯤은 있을 텐데 싶고, 집이 보스턴에 있으니 똑같은 조건으로 일하는 거라 보스턴 근무를 선택했어요. 어느 보험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아무래도 본사가 캘리포니아에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최적화된 보험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요즘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저보다 영어 잘하는 남편이 도와주면 좋은데 괜히 돈을 더 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바빠졌어요. 일단 시간시간 미팅이 너무 많아서 근무 중에는 시간 내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전화하면 한 세월 걸리는 미국 시스템에서 남편이 일하는 도중 전화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죠. 결국은 다 제 몫이 되어버렸어요.
한국처럼 건강보험만 있으면 어느 병원, 어느 의사를 만나도 되는 게 아니라 미국은 먼저 바뀐 보험으로 커버되는지를 알아봐야 해요. 온 가족 주치의(PCP: primary care physician)가 in-network인지 아닌지를 체크해야 하고요. 지난주부터 큰아이 피부과 약 처방전(prescription)을 새로 받아 보내야 하는데 보험상에서 시스템 오류가 있어서 3개월치 약값이 500불이 넘게 나왔어요. 그걸 알고는 CVS 약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보험사에 연락해서 확인해 보라고요. 아시죠, 보험사에 전화하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여기 연결, 저기 연결. 또 본인의 약이 아닌 18세 이상의 성인인 자녀의 약을 대신 받으려는 거라 그걸 확인하는 과정 등등 정말 몇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요. 암튼 보험사에서 시스템 오류를 고치려면 3-4주 걸리는데 오늘 하루만 열어줄 테니 가서 약을 찾아오래요.
보험사와 얘기가 잘되어 그건 일단락 되었는데 또다시 문제 발생, 예전에는 보험에서 커버되던 연고가 새로 바뀐 보험에서는 안된다고 닥터 노트에 in general이라는 문구를 넣어달라고 부탁하래요. 병원에 전화해서 얘기하니 그 약이 어떤 약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하네요. 아이가 먹는 캡슐 하나랑 연고랑 크림이 있는데 그걸 또 확인하러 보험사에 전화하고... 보험사에서는 알아본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더니 그러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겨우 연결되어 50분 넘게 통화했는데 결국은 본인이 아니라 말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상황을 병원에 얘기하니 대강 연고가 보험커버가 안될 것 같다고 추정을 해서 프리스크립션을 작성했어요. 이 과정을 또 반복하고 싶지 않아 3개월치 약을 부탁했고요. 이 병원은 프리스크립션 관련 전화를 하면 바로 받는 게 아니라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나면, 확인하고 나중에 전화를 해주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메시지를 남기고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병원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둘째 픽업하는 운전 중에 전화가 오기도 하고, 스피킹 스터디 시간에도 전화가 옵니다. 파트너 분께 죄송하다고 하고 전화를 받기도 하고... 이 병원은 얼마나 친절한지 수시로 병원과 약국에서 업데이트되는 현황을 전화로 알려줍니다. 그리고는 만약 약을 오늘 픽업해야 하면 보험이 적용이 안된다고, 자신이 약국에 알아보니 GoodRX 프로그램을 쓰면 150불 정도에 약을 받을 수 있다고 해요. 보험이 있는데, 보험 시스템 상의 문제라 곧 해결될 것이고,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고 했어요. 물론 약에 따라서는 보험이 있어도 GoodRX 프로그램으로 약을 구입하면 더 저렴하기도 해요. 미국은 똑같은 약을 구입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보험에 따라, 보험 유무에 따라 다른 값을 지불해야 하는 신기한 시스템이랍니다.
보험사, 병원, 약국...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얼마나 혼이 나갔는지. 어쨌든 큰아이 처방전 약은 우여곡절 끝에 처리해서 UPS로 보냈어요.
이제는 둘째, 마침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빨리 하려고 알아봤어요. 지금까지 봐왔던 의사 선생님이 바뀐 보험으로 커버가 안되어 먼저 주치의(PCP: primary care physician)를 바꿔야만 해요. 보스턴 이사와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봐왔던 의사 선생님인데 하루아침에 바꿔야 하니 얼마나 난감한지요. 그래서 소아과 의사 중에 새로 바뀐 보험으로 커버되는 의사를 웹사이트에서 찾아 리스트를 만들어서 전화를 해봅니다. 어느 의사는 더 이상 새 환자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어 보험으로 커버되는 의사 선생님 리스트를 뽑아 하나하나 확인을 해야 해요. 그 확인 과정에서 둘째는 현재 17살이고 곧 18살이 되어 일반 소아과 의사가 아닌 family position 닥터를 찾으라고 해요. 그래서 또 보험 커버되는 의사 선생님들 중에 family position 닥터가 있는지 찾아봅니다.
웹사이트에서 보험커버되는 소아과 의사 중에 family position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고 다시 병원에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이가 곧 18세가 되기에 성인 닥터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고 하네요. 그 말을 왜 지금 하냐고~ 소리가 절로 나와요. 큰아이는 작년 19세까지도 같은 소아과 선생님께 첵업을 받았는데 그러면 몇 살부터 성인 닥터를 만나게 되냐고 물으니 보통은 대학 가고 나면서부터라고 해요. 그런데 이번에 보험이 바뀌니까 아예 성인 닥터 찾는 것을 추천한다고요. 제 의사 선생님과 같은 분을 만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제 담당의는 이제 더 이상 새 환자를 받지 않아요. 이 과정에서 같은 병원이라도 보험에 따라 의사 선생님들 오피스가 다르다는 것과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결국 리스트 만들어서 병원에 전화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병원에 전화 중에 여기저기 연결되다가 끊기기도 하고, 잘못 연결되기도 하고... 보험하나 바뀌는 건데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다행히 저와 남편 주치의는 보험 커버가 되어 오피스에 연락해 새 보험 정보 업데이트 하면 되네요. 미국 보험 HMO는 반드시 주치의를 지정해야 하고, PPO는 괜찮다고도 하는데 모두 주치의를 지정해 놓는 게 좋아요. 주치의를 지정해 두어야 여러모로 편리해요. 병원에서도 주치의부터 지정하라고 얘기합니다. 이전 남편 회사에서 제공한 보험은 HMO였고, 이번 회사는 PPO라 보험 특성상 커버가 더 잘되어 편리할 줄 알았는데 일단 주치의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보험회사에 보험 적용 유무에 따라 처방전 약이 달라지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또 미국생활을 배워갑니다.
그 사이 큰아이 필요한 용품 서치하고 챙겨서 오더 해주고, 둘째 피부 트러블이 있어 병원에 가려는데 바로 못 가게 되어 찾아보고 주문하고, 큰아이가 봄방학에 집에 온다고 해서 비행기 티겟 예약하고... 아이들이 커서 이제 손 가는 일 없겠다 하지만 일상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있으면 정신없이 바빠요. 조용히 고요히 평화롭게 영어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오늘도 저는 허덕이며 하루를 살아냅니다.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한 영어지만 제 힘으로 이만큼 일처리를 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해요. 또 이런 게 동기부여도 되고요. 갑작스레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져 지친 요며칠이지만 궁디팡팡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