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눈뜨면 똑같이 마주하는 삶, 늘 가까이 있으니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가끔 잊을 때가 있어요. 지난주 잠시 일상을 떠나 큰아이 학교 행사로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어요.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이것저것 분주히 챙기고 이른 새벽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엄마 노릇은 쉽지 않구나 실감합니다. 갑자기 집 나서기 몇 시간 전부터 눈이 펑펑 내려서 공항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고, 한 시간 비행기 딜레이도 있었다지만 먼 길 남편과 함께 가니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나이가 들어가니 익숙한 게 좋고, 자꾸 편한 것을 찾게 되곤 해요. 새로운 경험이 주는 설렘보다 평온하고 잔잔한 삶이 마음에 안도를 주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만 엄마니까 또 힘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가끔드는 생각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 혼자 삶이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할 일들을 아이들 덕분에 하는구나 싶어요. 몸이 고되긴 했어도 아이들 생각하며 하루를 더 바삐 보내면서 힘이 나기도 했고요. 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내는 것 역시 삶의 큰 활력이 되는구나 싶기도 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
남편과 함께 큰아이에게 가는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 가볍습니다. 혼자서, 또는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갈 때면 보호자로서 신경 잔뜩 쓰고 긴장하며 움직이게 되는데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이랑 함께 가니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어요. 잠시 느슨하게 편안히 남편 옆에 있으면 되니까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재택근무하고 있는 남편이라 집에서 매일 하루종일 붙어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공기처럼 너무 편안히 느껴지는데 낯선 환경에서 마주하는 남편은 언제나 저에게 든든한 존재예요. 무거운 짐들 행여 제가 들까 봐 먼저 다 옮기고, 제 자리 먼저 챙겨주는 남편을 보고 저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구나 싶고 새삼 고마움을 느껴요. 팔꿈치 아픈 와이프 손 잡아서 비행기 좌석 팔걸이에 올려주며 편히 가라는 남편,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몰랐구나, 긴긴 세월 너무나 익숙해진 감사함으로 때론 표현을 아끼기도 하는데 반성도 해 봅니다.
조금있으면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보다 더 긴 시간을 제 옆에 있어줄 사람이기도 해요. 이제는 남편 없는 삶은 상상이 되지 않는 걸 보면 제 인생에 있어 남편은 엄청나게 큰 사람이구나 싶어요.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저희 부부는 또 조금은 다른 모습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단조로운 미국에서의 삶이 서로를 더 의지하며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도 덜도 말고 두 딸들도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